'참교육'이라는 폭력.... 그리고 AI시대 교육의 마지막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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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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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07-03 09:30
교육언론[창]이 7월 3일 보도한 칼럼에 따르면, 최근 방영된 드라마 '참교육'이 학교 현장에서의 체벌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서사로 기능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정희 무주 푸른꿈고등학교장은 이 칼럼에서 1980~90년대 촌지와 입시 비리에 맞서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 온 참교육 운동의 이름이, 지금은 아이를 힘으로 눌러 '바로잡는' 드라마에 빌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칼럼은 2010년 발생한 '오장풍 사건'을 비롯한 학교 체벌 실태를 재조명하며, 체벌 금지가 '문제아 방치' 논리가 아니라 '이것은 폭력이다'라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힘은 아무리 '교육적 의도'라는 이름을 붙여도 본질적으로 폭력이며, 국가가 질서와 안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행사한 폭력의 역사와 같은 문법이 학교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주요 논지다.
특히 AI 시대를 맞아 표준화된 평가와 평균에 맞추는 교육을 기계가 더 잘 수행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교육의 마지막 책무는 오히려 아이마다 다른 속도와 경로, '들쭉날쭉함'을 읽어내고 지켜주는 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버드 교육대학원 교수 토드 로즈(ADHD로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혔던 인물)의 사례를 인용하며, 평균적인 학생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의 속도로 배울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Commentary: 이 칼럼은 교육 현장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 온 체벌과 훈육의 경계 문제를 AI 시대라는 새로운 프레임 속에서 재구성한 점이 인상적이다. '참교육'이라는 이름이 극명하게 상반된 의미로 사용되는 현실은 한국 교육의 정체성 혼란을 드러낸다. 다만 칼럼이 제시하는 '마지막 책무'가 실제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아, 원론적 선언에 그칠 위험도 있다.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현장 교사들이 직면한 생활지도의 현실적 어려움과의 간극을 메우는 논의가 후속으로 필요해 보인다.
AI 연구실 티타임
오늘 교육언론[창]에 올라온 칼럼 하나가 정말 화제예요. 제목이 '참교육이라는 폭력... 그리고 AI시대 교육의 마지막 책무'인데, 드라마 '참교육'이 아이를 힘으로 바로잡는 걸 정당화하는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어요. 게다가 AI 시대에는 오히려 아이들의 개별성을 지켜주는 게 학교의 마지막 책무라고 주장하더라고요.
맞아요. 이 칼럼, 박정희 교장선생님이 쓰셨는데 내용이 꽤 깊어요. 2010년 '오장풍 사건' — 그 기억나시죠? 초등학교 선생님이 빗자루 자루와 골프채로 학생을 때려서 결국 전국적으로 체벌금지법이 만들어지게 된 그 사건을 다시 꺼내면서, '교육적 의도'라는 말이 폭력을 어떻게 포장해왔는지 분석해요. 역사적으로 우리는 그걸 이미 경험했는데, 드라마가 그 폭력의 정당화를 다시 재생산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흥미로운 건 칼럼이 하버드 교수 토드 로즈의 사례를 들면서 AI 시대 교육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는 점이에요. 토드 로즈는 ADHD라는 이유로 '문제아' 낙인 찍혀 자퇴한 사람인데, 나중에 연구한 결과 '평균적인 학생'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죠. 그런데 바로 그 평균에 맞추는 작업을 지금 AI가 인간보다 훨씬 잘하고 있어서, 학교가 굳이 그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결국 칼럼이 말하는 핵심은 이거예요. 암기·표준화·평균화는 AI가 대체하는 시대에, 학교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평균에 안 맞는 아이들을 힘으로 바로잡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와 길을 읽어주고 지켜주는 일'이라는 거죠. 드라마 '참교육'이 보여주는 카타르시스가 사실은 가장 경계해야 할 감각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이 특히 날카로웠어요. 교권과 생활지도의 딜레마 사이에서 고민하는 현장 교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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